*한국의 美와 전통이 살아있는 歷史마을. 안동 河回마을*

 

 

 

*안동 河回마을은 民俗的 傳通과 건축물을 잘 保存한 豊山 柳氏 (류 씨)의 집성촌이며. 2010년 유네스코

세계文化遺産으로 등재된 마을이다. 마을의 住居 건축물과 亭子. 書院 등의 전통 건축물. 그리고

주거문화가 조선 시대의 사회 구조와 독특한 遺敎的 양반 문화를 잘 보여져 등재되었다. 나지막한 산으로

낙동강이 마을을 휘감아 흐르는 지형이라 河回라는 이름도 유래되었는데. 풍수학 吉地라 전한다*

 

 

 

 

 

*하회마을 안내도*

 

 

*개미취 꽃 밭을 돌아본 後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본다*

 

 

 

 

 

 

 

 

 

 

 

 

 

 

*遠志精舍 (원지정사)*

 

 

*원지정사 해설글판*

 

 

 

 

 

*燕坐樓 (연좌루)*

# 2層 樓閣인 연좌루는 부용대를 마주하며 강물을 굽어보기 위해 지은 것으로 누각에 오르면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함께

부용대의 빼어난 景治가 펼쳐진 풍경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계단문이 잠겨져 있어 올라가지는 못하였다#

 

 

 

 

 

*원지정사 마당에서 보는 부용대*

 

 

 

 

 

 

 

 

*河回書堂 (하회서당)*

 

 

 

 

 

*3.1 운동 만세 松*  (樹齡 400여年에 높이 6m 둘레 1.5m 安東市 보호수)

 

 

*만세松 앞. 독립운동 대표마을 하회마을 알림판*

 

 

*만세송과 부용대*

 

 

 

 

 

*삼신당 소원쪽지 적는 곳*

 

 

 

 

 

*소원 쪽지 쓰는 현주님*

 

 

*三神堂 (삼신당) *

 

 

 

 

 

 

 

 

 

 

 

 

 

 

 

 

 

 

 

 

 

 

 

 

 

 

 

 

 

 

 

 

*養眞堂 (양진당)*

 

 

 

 

 

 

 

 

*양진당 사랑채*

# 사랑채 앞에 걸려 있는 立巖古宅 (입암고택)이란 현판은 풍산 柳氏 族譜(족보)를 완성한 류영의 號를 따서 지었다#

 

 

 

 

 

*忠孝堂 (충효당)*

 

 

 

 

 

 

 

 

 

 

 

*대청마루*

 

 

*忠孝堂 현판은 朝鮮中記를 대표하는 儒學者 미수 許穆 (허목)이 쓴 글씨라 한다*

 

 

 

 

 

 

 

 

*충효당 앞마당 구상나무*

#1999년 영국 女王 엘리자베스 11세가 하회마을 방문을 記念하기 위하여 심었다#

 

 

 

 

 

*충효당 앞마당 정원의 石塔*

 

 

 

 

 

*마을 內 카페*

 

 

 

 

 

*鵲泉古宅 (작천고택. 現 류시주 가옥)*

 

 

 

 

 

 

 

 

*養吾堂 古宅 (양오당 고택)*

 

 

 

 

 

*고택 사랑채*

 

 

 

 

 

*예쁜 도자기 소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집*

 

 

 

 

 

 

 

 

 

 

 

 

 

 

 

 

 

 

 

 

 

 

 

*念行堂 (염행당) 고택 *

 

 

*염행당 사랑채*

 

 

 

 

 

 

 

 

*염행당 고택에서는 마을 짚공예 장인들과 체험을 해볼 수 있다 (출처: 하회마을 홈페이지)*

 

 

 

 

 

 

 

 

 

 

 

 

 

 

 

 

 

*和敬堂 故宅 (북촌댁. 국가민속문화재 제84호)*

 

 

 

 

 

 

 

 

*和敬堂(북촌댁)*

#화경당은 마을북쪽 99칸 집으로 불려졌으며. 사랑채. 안채. 별당채. 사당. 대문간채를 두루 갖춘 사대부집이다#

 

 

 

 

 

 

 

 

 

 

 

 

 

 

*부용대와 옥연*

 

 

 

 

 

*2024년 하회. 선유줄불놀이: 河回夜宴행사 홍보 팜플랫*

 

 

*선유줄불놀이 광경*

 

 

 

*自然과 사람이 한 폭의 그림이 되는 屛山書院*

 

 

 

*安東 屛山書院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遺敎 建築物로서 서애 柳成龍 (1542~1606) 先生과 그의 弟子이며 셋째 아들

수암 柳珍 (1582~1635) 공을 배향한 書院이다. 이곳은 서애 先生께서 31세 때인 1575년에 豊山 상리에 있던 

풍악 서당을 이곳으로 옮겨와 弟子들을 가르치던 곳으로 1607年 선생이 돌아가신 後 묘우 (專德祠)를 짓고 선생의

위판을 모셨으며. 每年 봄. 가을 享祀 (향사)를 받들면서 書院으로 昇格되었다. 그 後 철종 14年 (1863)에

屛山書院으로 賜額 (사액) 받았으며. 흥선대원군의 書院撤廢令에도 毁撤 (훼철) 되지 않은 全國 47개 書院 중 하나이며

사적 제260號로 指定되어 있으며. 韓國의 書院으로 UNESCO 世界遺産으로 登材된 書院이다*.

 

 

 

 

 

*서원 입구의 매점*

 

 

 

 

 

*지난해에 이어 다시 찾은 屛山書院. 배롱나무 꽃이 절정에 이른 듯 화려하게 피어있다*

 

 

 

 

 

 

 

 

 

 

 

 

 

 

 

 

 

*서원 안내판*

 

 

 

 

 

*復禮門*

 

 

*복례문은 書院의 正門으로 自己慾心을 버리고 禮儀凡節을 따름에서 由來하여 이름 지었다*

 

 

*光影池 (광영지)*

 

 

*광영지는 세상을 비추는 거울로서의 연못을 맑게 하기 위해 늘 신선한 물을 공급하듯이 생각

(사유)의 根源인 책 읽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는 서애선생의 가르침이 담겨있는 곳이다*

 

 

 *晩對樓 (만대루)*

 

 

*晩對樓 (만대루)는 저물 무렵 屛風처럼 둘러쳐진 屛山의 山水를 만나기 위한 格物致知 (격물치지)의 공간이다*

 

 

*格物致知 (격물치지). 復禮門. 晩對樓. 光影池가 있는 이곳은 흘려가는 물처럼 한결같은 마음으로 學文하고 禮 를

배우고 실천하는 가운데. 인의 세계로. 세상의 바른 理致로 다가갈 수 있음을 象徵化하여 드려 낸 공간이다*

 

 

 

 

*만대루 누각*

 

 

*屛山書院 본관 立敎堂*

 

 

*立敎堂은 講學 活動을 위한 核心 建築物이며. 院長 서원 任員의 집무실과 儒生의 講學을 위한 대청마루가 있다* 

 

 

 

 

 

 

 

 

 

 

 

 

 

 

*입교당에서 보는 尊德祠 (존덕사)*

 

 

 

 

 

*靜虛齋 (정허재). 動直齋 (동직재)는 儒生들이 寄宿과 개인 학습을 하던 건물이다*

 

 

*動直齋 (동직재)*

 

 

 

 

 

 

 

 

 

 

 

 

 

 

*內三門 (내삼문). 일명. 神門. 신성한 祠堂으로 들어가는 영혼의 문으로 평삼문 형식이다*

 

 

*尊德祠는 서애 先生의 위판을 모신 祠堂으로 선생의 學文과 德行을 높이 우러른다는 뜻에서 尊德祠라 하였다.

神門을 통하여 들어갈 수 있지만. 해설사 부재로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藏板閣 (장판각). 책을 찍는 木板을 保板을 보관하고 있다*

 

 

 

 

 

 

 

 

 

 

 

 

 

 

 

 

 

 

 

 

 

 

 

 

 

* 典祀廳 (전사청). 향사 때 제수와 제물을 보관하는 곳이다*

 

 

 

 

 

 

 

 

 

 

 

 

 

 

 

 

 

 

 

 

 

 

 

 

 

 

 

 

 

 

 

 

*달팽이 화장실*

 

 

 

 

 

 

 

 

 

 

 

 

 

 

 

 

 

 

 

 

 

 

 

 

 

 

 

 

 

 

 

 

*유네스코 世界文化 遺産 목록에 등재된 병산서원 (屛山書院)*

 

 

 

*병산서원 (屛山書院. 사적 제260호)*

# 병산서원은 다른 서원과 다르게 서당에서 書院으로 變身한 歷史적인 서원이다. 서원의 始初는 豊岳 書堂 (풍악서당)이다.

풍악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에 이 地域을 풍악현이라고 하는데서 비롯되었다. 풍악현의 中心은 풍산읍이었다.

병산서원은 낙동강 상류에 자리 잡고 있어 그 수려함이 남다르다. 병산서원으로 들어가는 길은 하회리에서 비포장 도로를

들어가야 한다. 낙동강 줄기와 만나 산등성이를 돌아 돌아가는 서정성 짙은 길은 일찍부터 詩人과 學者들 사이에

유명한 산보 길로 알려져 있는 곳이며. 병산서원 內 대표적인 건물로는 위패를 모신 존덕사와 講堂인 立敎堂. 유물을 保管하는

장판각.寄宿舍인 동재와 서재. 전사청. 고직사와 外三門인 復禮門 (복례문)과 樓閣인 晩臺樓 (만대루))가 있으며.

性理學과 관련된 文化的 가치가 認定되어 한국의 14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登在되어 있다 #

 

 

 

 

 

*병산서원 안내문*

 

 

*병산 (屛山)*

#하회구곡의 제1곡 병산은 병산서원 맞은편에 위치한 屛風처럼 펼쳐진 산이다. 병산서원은 서애 류성룡(1542~1607)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서원으로 河回마을의 주산인 화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낙동강을 품고 있는 배산임수의 지형을  갖추고 있다#

 

 

 

 

 

 

 

 

 

 

 

 

 

 

 

 

 

 

 

 

 

 

 

*서원 안으로 들어가는 復禮門 (복례문)*

 

 

*光影池 (광영지)*

#만대루와 복례문 사이에 물길을 끌어들여 만든 天圓地方 형태의 연못으로 조성되어 있다.

 천원지방은 우리나라 傳統 연못의 조성 원리로 조상들의 우주관이 상징적으로 표현된 것이며.

땅을 의미하는 네모진 연못 가운데 하늘을 상징하는 둥근 섬을 두었다. 規模는 크지 않지만

修心養性을 근본으로 하여 學文에 정진할 수 있도록 배려한 서원 속의 정원이다*

 

 

 

 

 

*晩對樓 (만대루)*

#만대루는 유식 공간으로 休息과 强學의 복합 共間이다. 200여 名을 收容하고도 남음직한 장대한 이 樓閣에는 다른 서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면이 있다. 휘어진 모습 그대로 서 있는 아래층의 나무 기둥들과 自然 그대로의

주춧돌 커다란 통나무를 깎아 만든 계단. 굽이도는 江물의 形狀을 닮은 대들보의 모습은 建築物조차 자연의 일부로 생각했던

祖上들의 의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晩對 는 두보의 詩 白帝城樓 중 푸른 절벽은 저녁 무렵 마주하기 좋으니 라는

구절에서 따왔다. 그 이름처럼 해질 무렵에 2層 누각에 올라서 바라보는 낙동강과 병산의 景致는 이곳의 경치 중 으뜸이다*

 

 

 

 

 

*만대루는 木造건물 보호 차원에서 樓閣에 올라가는 것은 禁止하고 있다*

 

 

 

 

 

*입교당에서 보는 만대루*

 

 

 

 

 

 

 

 

 

 

 

 

 

 

*立敎堂 (입교당) *

#가르침을 바로 세운다 는 뜻의 立敎堂은 院長과 儒生들이 講論을 했던 곳이며. 講堂은 서원에서 가장 中心이 되는 건물이다#

 

 

 

 

 

 

 

 

 

 

 

 

 

 

 

 

 

 

 

 

 

 

 

*內三門 (내삼문)*

 

 

*내삼문 안의 관세대와 정료대는 開訪을 하지 않아 들어가 보지 못한다* 

 

 

 

 

 

 

 

 

 

 

 

 

 

 

 

 

 

 

 

 

 

 

 

 

 

 

 

 

 

 

 

 

 

 

 

*藏板閣 (장판각)*

# 장판각은 민도리집 (모가 난 도리를 써서 꾸민 집) 계통으로 되어 있으며 책판 및 遺物을 보관하는 곳이다 #

 

 

 

 

 

 

 

 

 

 

 

 

 

 

 

 

 

*典祀廳 (전사청)*

# 전사청은 향사 시 제수를 장만하여 두는 곳이다 #

 

 

 

 

 

 

 

 

 

 

 

 

 

 

 

 

 

 

 

 

 

 

 

 

 

 

*서원 밖에는 보는 만대루*

 

 

 

 

 

 

 

 

 

 

 

*서당 밖 달팽이 화장실*

 

 

 

 

 

 

 

 

 

 

 

 

 

 

 

 

 

 

 

 

 

 

 

*河回마을 부용대*

 

 

 

*내 고향. 안동 여행 2부. 한국의 美와 전통이 살아있는

歷史마을 하회마을*

 

 

 

*하회마을은 豊山柳氏가 800여 년간 대대로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인 동성마을이며. 瓦家와 草家가

오랜 역사 속에서도 잘 保全된 곳이다. 특히 조선시대 대유학자인 류운룡과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류성룡 형제가 태어난 곳으로도 유명하다. 마을 이름을 하회(河回)라고 한 것은 낙동강이

S자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 안고 흐르는 데서 유래되었으며 하회마을은 형국상으로 테 극형

연화 부수형. 행주형에 해당하며 조선시대부터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도 알려진 곳이다.

하회마을에는 서민들의 놀이인 하회별신굿 탈놀이와 선비들의 풍류놀이인 선유 줄불놀이가

현제까지도 온전히 전승되고 있고 전통생활 문화와 古建築양식을 보여주는 문화유산들이 보존된 곳이다*

 

 

 

 

 

*忠孝堂은 조선 중기 때 재상이자 학자였던 서애 류성룡「柳成龍」 가문의 종택으로. 孫子 류원지「柳元之」가

류성룡의 學德 을 追慕 하기 위해 儒林과 제자들의 뜻을 모아지었다고 한다. 유성룡은 벼슬을 마치고

歸鄕한 후 풍산현에 있는 삼간 초옥에서 별세한 것으로 전해진다. 西쪽을 앞면으로 12칸의 긴 행랑채를 두고

안쪽으로 ㅁ자 모양의 안채와 -자형의  사랑채가 연이어 있다. 12칸의 긴 행랑채는 류성룡의 8世孫인

류상조「柳相祚」가 병조판서에 任名된 뒤 부하 군사들을 收容하기 위해지었다고 한다.

忠孝堂이란 이름은 류성룡이 平素에 ˚나라에 忠誠하고 父母에 孝道하라 고 강조한 데서 유래하였다*

 

 

 

 

 

 

 

 

 

 

 

*충효당 현판은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유학자 미수 허목 (許穆)이 쓴 글씨라 한다*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방문을 記念하는 뜻에서 구상나무를 심었다는 기록판*

 

 

#안동 하회 양진당 (養眞堂)  보물 제306호#   

*양진당은 豊山 柳氏의 큰 種家집으로 朝鮮 中記의 文臣이자 학자인 류운룡「柳雲龍」 가문이 사는 집이다*

양진당은 류운룡의 先祖 류종해가 14세기말 하회마을에 처음 들어왔을 때 터를 잡은 곳이며

집의 건물은 류운룡의 父親 류중영「 柳仲郢」이 지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 다시 고쳐 지었고

그 후 여러 대에 걸쳐 다시 지은 흔적이 있다. 사랑 대청 북쪽 벽에 걸려 있는 양진당 이란 현 판의

이름은 최초로 풍산 류 씨 족보를 완성한 류영 「柳泳」의 호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사랑채 앞에 걸려 있는 입암 고택 (立巖古宅)이란 현판은 은 류영의 호 입암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삼신당 (三神堂). 이 곳은 하회마을에서 가장 중앙에 위치해 있다. 류종혜가 入鄕할 때 심은 것으로

전해지는 樹齡이 600백 년이 넘는 나무이며 마을 사람들이 성스럽게 여기고 있다*

 

 

 

 

 

 

 

 

 

 

 

 

 

 

 

 

 

 

 

 

 

 

 

 

 

 

*북촌댁 (北村宅)*  

*北村宅은 당호가 和敬堂으로 210年여 동안 적선지가「積善之家」( 좋은 일을 많이 한 집 )으로 선대의 배품과

선비로서의 學殖과 氣稟을 고스란히 保存하고 있는 풍산 柳氏 집안의 古宅이다*

 

 

*화경당*

 

 

 

 

 

*남촌댁*

 

 

 

 

 

 

 

 

*원지정사 (遠志精舍) 이정 사는 유성룡이 父親喪을 당하여 落鄕한 後 1576년에 서재로 쓰기 위해 지은 것으로.

원지는 서쪽의 원지산에 나는 약초이다. 마음을 다스려 정신을 맑게 하는 效能이 있어 서애가 평소

즐겨 쓰던 것으로 그가 여기에서 정사의 이름을 따왔다고 원지정사 기문(遠志精舍記文)에 밝히고 있다*

 

 

*연좌루. 2층 樓閣인 연좌루는 부용대를 마주하며 강물을 굽어보기 위해 지은 것으로 누각에

오르면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함께 빼어난 경치가 펼쳐진 풍경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부용대*

 

 

 

+ Recent posts